예배와 말씀

YANGUIMOON PRESBYTERIAN CHURCH

설교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본문말씀 : 시편 13:1~6
설교자 : 김준범 목사
날 짜 : 2024.02.25
말씀구분 : 오전예배
  • 관리자
  • 24.02.25
  • 182






시편 13 편


1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절: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

5절: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

 



< 말씀 요약 >


     시편 13편은 짧은 시편이지만, 고난 중에 있는 성도가 이 땅에서 시련과 고난을 겪을 때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모범(정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귀한 시편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1-2절)

     이 기도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1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1-2절은 하나님을 향한 다섯 개의 질문으로, 여기에는 “어느 때까지” 또는 “언제까지”라는 말이 네 번이나 사용되었고, “영영히”라는 말이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어떤 고통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일평생 몸부림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다윗을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처럼 보였고 그의 얼굴을 숨기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언제까지 자기를 외면하시겠느냐고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1절). 또한 다윗은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2절)라고 했습니다. 걱정하고 근심하는 날들을 언제까지 보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공격하는 원수(대적)들은 다윗을 치며 자긍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원수들이 어느 때까지 득세하며 자기를 공격하고 압제하도록 내버려두시겠느냐고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2절).

     괴로움과 환난, 원수들의 공격을 만날 때, 다윗의 마음은 특별히 많이 답답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이후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갔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역경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자가 되어 10년 넘게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괴로운 상황을 빨리 해결해 주시지도 않았고 도와주시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롭고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은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3-4절)

     다윗은 곤고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3절).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간구할 때에 3개의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먼저, “나를 생각하사”(3절)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생각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나밧)는 본래 “~을 바라본다(look upon)”라는 뜻을 가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금 자기를 외면하고 계시고 영영히 잊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하나님께 “곤고한 저를 보시고, 저를 생각하여 주소서” 하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또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3절) 하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알면서도, 기도할 때마다 “내게 응답해 주옵소서” 하고 간구하는 것이 기도의 속성입니다. 또한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는 영육 간에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의 괴로움과 고난이 계속되어 지치고 힘을 잃고 낙망하여 “사망의 잠” 곧 “절망의 잠”에 빠지게 되고, “죽음 그 자체”에 이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3절). 또한 그의 원수들이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고 말하며 기뻐하게 될까 두려웠기(lest) 때문입니다(4절). 다윗은 그러한 상황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원수들이 오히려 기뻐하고 기세등등하게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지금 다윗이 말하고 있는 “원수”는 단순히 다윗의 개인적인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시편에 등장하는 원수들을 단순히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껄끄러운 사람들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매우 주관적으로, 왜곡해서, 위험하게 읽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을 그렇게 우리의 기도에 적용시켜서는 안 됩니다. 시편의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는 항상 “죄와 마귀와 세상”입니다. 이 기도는 “마귀의 일들과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세력들, 그리고 거룩한 말씀에 반대하는 모든 악한 의논들을 멸하여 주옵소서”(HC 123문의 답)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6절)

     그런데 이 기도의 분위기는 갑자기 바뀝니다. 다윗은 아직 근심스러운 현실 속에 있었습니다. 기도를 한 번 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환경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을 계속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계신 것처럼 보였고, 원수는 여전히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현실 속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한다고 하였습니다(5절). 인자하심이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변함없는 사랑(헤세드)을 의미합니다. 다윗에게는 여전히 여러 도전과 위험과 슬픔과 근심이 있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알았고, 그래서 그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생각하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기도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주의 구원”을 생각하며 “주의 구원”을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5절). 다윗은 지금 단순히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구원해 주시면 제가 기뻐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을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주의 구원을 인해서 계속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지금 고난 속에서도 “아, 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지! 내가 지금 비록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악을 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고난과 시련 속에 있지만,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은 나를 언약 백성으로 불러주셨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겠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해 자주 망각합니다. 하나님이 마치 또 다른 구원을 베풀어주셔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의 복을 받았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미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노래하며 고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제까지 어떻게 후대해 주셨는지를 생각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6절)라고 하였습니다. 6절을 보다 분명히 번역하자면, “저는 여호와를 찬송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저를 이제까지 후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나를 후대해 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여호와를 여전히 찬송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하고 부르짖으면서 탄식 가운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큰 확신과 기쁨으로 기도를 끝맺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으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여전히 십자가에서 밝히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호와를 찬송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제까지 우리를 후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환난과 역경의 날에 이 시편을 우리의 기도로 삼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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